본문 바로가기
  • 간단! 명료! 핵심! 쉽게 알고 즐겁게 마시는 술 이야기. EASY drinking
{ SPIRIT HISTORY } 보드카,럼,진,데킬라

RUM HISTORY part1.

by 사바사강 2023. 1. 7.
반응형

RUM HISTORY PART1. 럼 역사와 삼각무역.

1. 럼이란?
럼은 사탕수수로 직접 만들어가나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 (당밀)을 발효 증류 숙성시킨 술이다. 
숙성하지 않은 럼을 라이트 럼이라 하며 오크통에서 숙성한 럼을 다크 럼이라고 한다. 
사탕수수 또는 당밀의 즙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



2. 럼의 역사
 
1. 럼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문헌은 영국의 식민지 바베이도스섬의 고문서로 그것을 서인도제도의 
토착민들은 " 럼 불린 "Rum bullion이라 부르면서 흥분과 소동이란 의미로 전파되었다. 1651년
하지만 럼의 최초역사는 명확하지는 않아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의 식민지 역사와 같이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이후 이를 식민지화. 대규모로 사탕수수를 경작하기 시작.
사탕의 공급지로 삼았다. 그 이후 인 17세기 초 바베이도스섬으로 이주해 온 증류 기술을 가진 영국인들이
최초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를 근거하는 내용으로

바베리도 섬은 완벽한 기후를 고려해 탐험가 리처드 리 돈은 장비 종류 노하우를 포함한 사탕수수 전문 지식을 브라질에서 들여왔다.
처음의 럼은 탐탁지 않은 맛과 강한 향 때문에 "킬 데빌"로 알려졌으며. 노예들은 이름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설탕 석회 그리고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이른 럼주 펀치와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앞에 나온 내용처럼
럼 불린 Rum bullion 또는 럼부스티온Rumbustion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에스파냐에서는 럼을 Ron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콜럼버스는 왜? 서인도제도로 항해했을까? 


당시의 동방의 설탕은 상당한 고가품이었다. 유럽에 설탕이 들어온 시기는 1099년 당시 십자군 전쟁에 깊이 관여하며 성장하던
베네치아는 이때부터 거의 500년 가까이 설탕 유통을 독점하게 된다. 육로로 이동하면서 여러 번 통행세가 붙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중해에서 소금과 노예교역으로 성장한 베네치아는 곧 원정으로 개척한 교역로를 독점해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중간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독점하던 베네치아의 독주가 깨진 계기는 포르투갈의 항로 개척이었다.

1498년 해로를 통해 인도 설탕을 직접 수입해오는 데 성공했고 곧 리스본에서도 설탕 유통이 시작했다. 
 
설탕을 맛을 본 유럽인들은 더 많은 설탕을 더욱 저렴하게 소비하기를 원했고 동방의 항로는 너무 멀고 비효율적이었고 유럽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는 땅도 지중해 주변으로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무모하게 대서양을 건너간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이다.
그렇게 서인도제도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이 사탕수수를 심는 일이었다. 
 
 설탕 산업은 일종의 테스트였는데 여기서 발명된 시스템이 바로 플랜테이션(Plantation. 
 
플랜테이션이 성립하려면 적정기후, 토양 노예노동 시장 개척 현지 경제조직 개발 기술 이전 등이 필요했다. 브라질 카리브해를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을 아우르는 이른바 신세계 전역에 이식되는데 브라질에 사탕수수가 처음 이식된 것은 1516년이며 상업적 생산을 시작한 것은 1550년이다.



럼주의 첫 증류는 17세기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설탕 정제 과정의 부산물인 당밀이 알코올로 발효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후에 이러한 알코올 부산물의 증류는 알코올을 농축하고 불순물을 제거하여 최초의 럼주를 생산하였다. 이러한 럼주를 만들게 된 건 추측일 뿐이지만
최초의 럼을 이야기 했듰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들이 당밀을 일종의 급여로써 받아서 일부를 먹고 일부를 발효시켜 음용했을 것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1612년 브라질의 설탕 생산량은 14,000톤이었으며 꾸준히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이런 성장은 노예와 착취를 전제로 한 것인데
카리브해에서 럼주가 개발된 후 식민지 북아메리카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17세기와 18세기 동안 유럽에서 설탕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였고
설탕 농장을 일하기 위한 노동력이 필요했고 유럽 노예무역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삼각무역)




럼이 처음 생산되기 시작하고 유럽의 선원뿐만 아니라 북미 지역에서 폭발 전인 인기를 끌어들이게 된다. 이를 증명하듯 1660년대
스테이튼 섬과 보스턴, 매사추세츠 같은 곳에 럼 증류소가 들어서고 대량으로 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유럽에서는 설탕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데. 그 부산물로 생산이 가능한 럼의 생산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니
사탕수수를 경작하기 위한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대량으로 사들여와서 투입하게 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북부에서 많이 생산되는 곡물을 서인도제도로 싣고 이곳의 당밀 설탕과 교환들하고 이를 식민지로가 술로 만든다.
이를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의 노예해안으로 들어가 럼주와 노예를 바꿔 다시 노예를 싣고 식민지로 와 농장에 이들을 팔아넘기는 식이었다. 

이러한 삼각 무역은 당시 식민지들의 본국의 항해법을 어기고 한 일종의 밀수 무역이었다.
삼각무역은 당시 식민지들 특히 북부 식민지들이 경제적 번영을 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고 이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자 
대외무역 기반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 1733년 당밀 법 1764년 설탕 법은 서인도제도로부터 당밀과 설탕의 유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반응형

댓글